기독교인에게, 자기 존중감과 소명이란,,

26 Mar 2013

노딩 코드

작가

진희정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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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존중감과 소명.

기독교인으로서,이런 유의 심리학 책은 좀 조심 스럽긴 하다.

자기 개발서들은 대부분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행동을 바꾸려다보니, 과정이나 그래야 하는 이유는 묻지 않고, 결과가 더 좋으니 이렇게 하라는 식일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하게 심리학 서적은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을 깔고 이야기를 전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물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에 그 안에 잘 발현되면 하나님 앞에 착한 것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성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결국 우리는 그 모든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우리는 청개구리처럼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의 죄성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떻게 보면 어의 없게도, 예수님 때문에 의인이라는 판결을 받은 우리에게서 갑자기 떠나가지 않는다. 우리를 의인으로 부르신 것에 감사하기는 하지만, 어느새 그것을 잊어버리고 뒷걸음 치고 있다. 물론 성령님께서 우리를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는 삶을 살도록 타이르시고 인도하시기는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로보트처럼 강제로 그렇게 만들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결국 심리학이 말하는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이렇다할 디딤돌을 제시해줄 수 없다. 신이 없다고 말하고, 그 나름의 선을 하나님과 상관없이 정의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긍정이 뭐 좋다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의 경우는 다르다. 부모님을 거역하고 그 보호와 사귐을 애써 부인하며 반대의 길로 향하는 그의 선함이 부모에게 무슨 한치의 기쁨이라도 남겨줄 수 있겠는가. 방향 부터 잘못된것을. 결심을 한듯 한결같이 반항하는 자녀는 부모의 탄식과 슬픔과 분노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당당함의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묻는다면 우리는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것이다. 알고 있다. 우리가 자녀의 자격이 있기 때문에 자녀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가 심판에 죽으실 것을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우리는 법적으로는 의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우리가 수치스러운 의인의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다닐까봐서,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그가 예언대로 부활하셨다는 기쁨의 소식을 몸소 전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도록 우리를 격려하시고 친히 간구하시며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의 조언자 상담자가 되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가 무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열등감은 어떠한가. 열등감이 결국 ‘다른 누군가’에 비해 작아보이는 나에 대한 슬픈 감정이라면, 우리는 뭐라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죽음’에 이르러야 할 죄인들 중에, 우리를 의인 아니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를 친구와 자녀로 삼아주셨는데, 무슨 열등감이 합당하기나 하단 말인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요한을 의식하여 요한의 장래에 대해서 물었던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너는 그냥 나를 따르라고 일러주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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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소명을 주시는가?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로 살도록,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도록, 그리고 빛과 소금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로 살도록 우리를 권하고 계신가보다. 길을 알고 길을 제시하고 길을 몸소 보여주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리더의 삶이 아니었던가.예수님처럼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부대끼며제자를 세우고,사람들을 섬기는그런 리더가 되어야지. 때론,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향해서,가식적으로 종교인 행세를 하는 바리세인들에 대해서거침 없이 질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라면때론 사람들을 거슬러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예수님이 만나주셨던 모든 사람이,곧 회계하고 돌아선건 아니었던것 처럼,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기 보다는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지.